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유명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억속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사건이기도 하죠.

대한민국 미제 사건 중 하나로 1991년 3월 대구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달서구 성서 일대의 와룡산이라는 곳이 사건 현장입니다.

개구리소년-실종사건-수색
개구리소년 찾기 운동


91년 3월 26일 와룡산으로 향한 5명의 초등학생들은 그 날을 기점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당시 기술로는 추적이 힘들다보니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사건 요약

 

사실 이 개구리소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개구리가 아닌 도롱뇽 알을 찾으러 와룡산으로 향했던 것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도롱뇽을 개구리로 착각해서 지어진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죠.

개구리소년-실종-포스터
개구리소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당사자
김종식(실종 당시 9세)
김영규(실종 당시 11세)
우철원(실종 당시 13세)
조호연(실종 당시 12세)
박찬인(실종 당시 10세)

91년 3월 26일 오전 8시경 조호연의 집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은 세들어 살던 주민이 시끄럽다며 다른데가서 놀라는 충고에 분유 통조림 통과 막대기를 들고 인근 와룡산으로 향했습니다.

이후 와룡산 입구에서 조호연의 형 조무연을 만나 '어디가냐'는 물음에 도룡뇽알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5명 모두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당일 오후 18시경부터 아이들을 찾아헤매던 부모들은 더 이상 늦어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19시 50분경 신고했고, 이후 경찰들도 투입되어 익일 새벽 3시까지 수색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했죠.

개구리소년-실종사건-현장
개구리소년 사건 현장


결국 경찰은 증거를 찾지 못해 가출이 아니냐는 결론을 지었고 실종자 가족들간의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매스컴을 통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전국에 알려지자 경찰 인력뿐만 아니라 군까지 총출동해 수색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5년간 약 3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력을 동원해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제보에 기대어 가족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녀보아도 장난제보나 허위제보가 대다수였고 개구리소년들의 행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개구리소년-실종사건-유가족
개구리소년 유가족의 삶


그렇게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후 11년이 흐르고 2002년 9월 도토리를 주으러 와룡산을 방문한 오우근씨에 의해 5명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발견된 곳

 

유골이 발견된 곳은 이전 육군 50사단의 사격장으로 쓰였던 곳 인근이었습니다. 사격장과 가까워 탄피가 많이 발견되었고, 이를 줍기 위해 와룡산을 오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골의 감식을 진행하려 했으나, 사건 현장이 너무 회손되어 현장감식이 어려웠다 합니다. 이에 그나마 멀쩡한 1구의 시신만을 감식할 수 있었고 옷 소매가 뒤로 묶여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후 매듭의 종류를 확인한 결과 왠만한 성인도 쉽게 풀지 못할만큼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타살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부검결과가 나왔고 둔기 또는 칼에 찔린채 숨졌다는 추정이 이어졌습니다.

개구리소년-실종-미스테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얼마 전 알쓸범잡을 통해 관련 사건이 다뤄지기도 했었는데요.

 


개구리소년들 가운데 그나마 맏형인 우철원의 두개골에서 약 25개의 상흔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개구리소년-유해-흔적
개구리소년 유골 흔적


발견된 유골 중 김영규의 소매와 단추는 찢겨져 있었고 눈을 가릴 목적이었는지 매듭을 묶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다른 유골에서는 외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우철원을 본보기 삼아 아이들이 반항하지 못하게 제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마지막에 교살(링크)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

개구리소년-장례식
개구리소년 장례식


사건을 재조사한 프로파일러들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계획적 살인이나 우발적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미 살인을 저지른 상태에서 산에 시신을 묻으러 갔다가 개구리소년들에게 현장을 들켜 살인을 저지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개구리소년-실종사건-범인
개구리소년의 행방


당시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함승훈은 같은날 와룡산에 들렀다가 고함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 그때를 회상하면 비명소리였던 것 같다고 합니다.

현재로도 가장 유력한 사인은 오발 사격설입니다. 군대에서 사격연습을 하다 오발사고로 인해 은폐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하지만 그 많은 눈들이 보는 중에서 아이 5명을 숨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설들이 난무했지만 결국 범인은 단 1명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범인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으며, 다른이들도 분명 더 살해했을 것이라 합니다. 행동 특성상 원한이나 돈 문제로 인한 살해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범인은 사건 현장인 곳이 새방골에서 가장 깊고 울창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시와 같은 장애물이 많고 군 사격장으로 사용되기에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특정했습니다.

하지만 2006년 3월 25일을 기점으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있해 영구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었고 그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범인은 1명이며, 와룡산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 사이코패스이고 범행 흉기로 보이는 용접망치로 볼때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할 확률이 높음. 개구리소년 모두를 한번에 살해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죽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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